일본 만화 전후 50년사 - 3

어린이 만화잡지의 창간

 

만화사에 관련된 서류를 뒤적여 보면, 패전직후의 만화상황을 기술한 대목에서는 이토 잇페이(伊藤逸平)가 주최하는 풍자잡지 『VAN(46년 창간)』이나 관서만화클럽(西漫クラブ)이 발행한  『망가만(まんがマン):같은 해 창간』등의 잡지가 자주 거론된다. 전후(戰後)의 만화를 이야기할 경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자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테마인 '스토리 만화'의 역사를 살펴본다고 하면, 그런 풍자잡지보다도 어린이용의 만화잡지 쪽이 보다 친근하며 연관이 깊다. 『만화소년(少年-망가쇼넨)』이나 『소년만화첩(少年-쇼넨망가초)』등 조악하게 만들어진 일련의 잡지들. 현재의 『주간소년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나 『리본(りぼん)』과 같이 두꺼운 것이 아니라, 제책상태만 본다면 당시 미군병사를 통해서 일본에 들어왔던 10센트 코믹에 가까운 것으로써 부수도 미미하였지만, 1940년대 후반(소화20년대 전반)에는 이런 어린이용의 만화잡지가 다수 출판되고 있었다.

소년소녀잡지는 5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그 이전에도 출판을 거듭해온 싸구려 어린이용 만화잡지는 분명히 존재하였다. 거기에는 빨간 책 만화와 공통되는 패전 직후의 만화출판의 활력과, 그 후 발전상으로 이어지는 원점이 내포되어 있었다. 구체적인 사항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40년대 후반의 어린이 잡지는, 만성적인 물자부족의 영향으로 인쇄용지가 부족해서 충분한 페이지수를 확보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4,50페이지 정도에 그치는 제본이 많았다. 판형을 살펴본다면, 『소년(少年):46 11월 창간 광문사(光文社)』이나 『소년소녀만화와 읽을 거리(少年少女漫み物)48 4월 창간 신생각(新生閣)』등의 A5판 형식과, 딱 주간지 크기인 B5판 형식의 두 가지가 주류였다.

뒤의 B5판형으로는 동경의 만화사에서 나온 『만화 그림책(まんがえほん:45년 창간 추정)』이나 오사카 육영출판(育英出版)의 『하로만화(ハロマンガ:46 11월 창간)』가 비교적 빠른 시기에 나온 출판물이다. 『하로만화』에서는 사카이 시치마(酒井七馬), [i]고테라 하토우라(小寺鳩甫)외에도 미국화된 그림체로 나중에 인기작가가 된 젊은 테즈카 오사무가 단편을 그리고 있었다. 『만화그림책』은 니시카와 타츠미(西川辰美)가 편집을 담당하였던 어린이용의 만화지로서, 와다 요시조(和田義三)의 밀림물인 『소년 타잔(少年タザン), 마츠시타 이지오(松下井知夫)의 『뒹굴뒹굴세루로(ころころセルロ) 』등을 게재했다.

46년에는 잡지가 줄을 이어 창간되었다. 3월에는 천초서방(千草書房)으로부터 타블로이드판 8페이지로 된 『순간어린이만화신문(旬刊子供マンガ新聞)』을 창간. 와다 요시조, 아키요시 카오루(秋好聲)[ii], 시미즈 콘(淸水崑), 미나미 요시로(南義郞)등 만화집단() 멤버의 만화를 실었다. 같은 달에 미국문화를 의식한 『어린이 만화(コドモ漫)(천진서점:川津書店)도 창간, 니세키 켄노스케(新關建之助)[iii]의 『Z광선(Z光線)』을 메인으로 삼았다.

또한 테즈카 오사무의 『정글대제(ジャングル大帝)』나 야마카와 소지(山川)의 『녹아웃 Q(ノックアウトQ)』가 게재된 것으로도 유명한 『만화소년(少年)(학동사:學童社)) 1947 12월에 창간호를 내고 있다. 이 역사적인 잡지에 대해서는, 야마다 히로오(山田ヒロオ) 편저 『만화소년사(「漫少年」史)』라고 하는 귀중한 업적이 있으며, 평론가인 시미즈 이사오()도 『만화소년과 빨간 책 만화(「漫少年」と赤本マンガ)』에서 스스로의 독서체험을 서술하고 있으므로 오늘에 와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i]사카이 시치마(酒井七馬,1970 4 26-1969 1 23)는 일본의 만화가, 애니메이터, 연출가, 종이연극작가, 그림이야기작가, 편집자이다. 본명은 사카이 야노스케(酒井弥之助). 종이연극에서는 左久良五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그 이외의 펜네임으로는 이사카 코마시치, 良凡등이있다. 오사카의 만화계에서 활약하였으며 1947년에는 아카혼 만화인 『신보물섬』을 테즈카 오사무와 함께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보물섬』이후에는 중앙 출판계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지만 다양한 화풍으로 오사카의 만화계와 종이연극계에서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관서쪽 만화계에서는 마이너한 축이었지만 만화가 그룹 만들기나 후진지도에 열심이었고 만화잡지제작에도 참여했다.

1920년에 구제중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23년에 오사카의 만화잡지 『오사카팩』에서 오노데라 하토우라에게 사사받아 편집을 하면서 만화를 그렸다. 1929년부터는 오사카신문의 촉탁만화기자가 되어 컷이나 만화를 그렸다.

1935년에는 닛카츠쿄토의 만화부에 입사해서 애니메이터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형과 친교가 있던 배우 오오코우치덴지로의 소개에 의한 것으로

[ii]1911년(메이지 44년)에 태어났다. 타카치호 중학교를 졸업후, 츠츠미 칸조의 문하생이 되었고 41(소화16) 「만화()」지에 『토도로키선생(轟先生)』을 연재해서 인기를 얻었다. 2차 대전중에는 만화가의 상당수가 동경에서 지방으로 소개되었지만 아키요시는 동경에 남아서 홀로 「만화」의 편집과 집필을 계속했다. 전쟁후인 49(소환 24)부터는 4콤마 만화인 『토도로키선생(轟先生)』을「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에 24년간 연재하였다. 그 외에는 『마스라오파출부회(ますらお派出夫)』등이 있다. 『토도로키선생』은 47,다이에토쿄에서 시마케이지 감독 코가와 로파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으며 『마스라오 파출부회 』는 56년(소화31년 ),토쿄영화가 영화화였다.

[iii]아무리 찾아도 이 사람의 이름에 대한 정확한 발음이 나오질 않아서 일단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측되는 것을 적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by sharkman | 2007/10/15 20:51 | 趣味生活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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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루드라 at 2007/10/15 20:59
생일 축하합니다. ^^
Commented by 獨向 at 2007/10/15 21:56
저두 묻어서 ㅊ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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