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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와 조르디노는 아침 4시에 출발했다. 아이스 헌터 호의 승무원 절반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추위는 수그러들었고 바다는 평온하며 하늘은 수정처럼 맑고 푸르게 개어 시속 9킬로미터의 미풍이 남서쪽으로 불었다. 피트가 조종간을 쥔 채로 포경기지로 향했고, 이어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폴라 퀸 호의 두 번째 착륙 팀을 찾기로 했다.
학살의 현장으로 바뀌어버린 펭귄 집단번식지 상공을 날면서, 피트는 깊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해안은 수평선 너머까지 코미컬하며 왜소한 새의 시체로 메워진 것처럼 보였다. 아델리 펭귄은 영역을 지키는 습성이 강하기 때문에 남극반도 인근의 다른 집단번식지에 사는 펭귄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 가능성은 희박했다. 만약 이 끔찍한 사태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생존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시모어 섬에서 번성했던 만큼 개체 수를 늘리려면 최소한 20년은 걸릴 것이다. 다행한 것은 이번 사태로 종이 모두 멸종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죽은 펭귄의 마지막 한 마리가 헬기의 기체 아래를 지나가자 피트는 고도를 50미터로, 기체를 수평으로 유지한 채 파도 치는 해안을 따라서 계속 비행하며 승객의 상륙지점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고 방풍 유리 너머로 눈을 부릅떴다. 조르디노는 옆 창문으로 바깥을 보면서 바다 위에서 얼음이 쌓인 상태를 파악해 폴라 퀸 호로 보이는 흔적을 찾았고, 가끔 무릎 위에 접어 둔 해도에 표시를 써넣었다.
“웨델 해의 빙산 하나를 10센트 동전으로 바꾼다면.” 조르디노가 중얼거렸다.
“제네럴 모터스라도 살 수 있겠는데.”
피트는 조르디노의 어깨너머로 헬기의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나선형의 빙벽에 새겨진 얼음 덩어리 미로가 펼쳐져 있었고, 그것은 바람과 조류에 밀려서 북서쪽의 따뜻한 바닷물과 만나면 갈기갈기 찢어져서 수천 개의 작은 빙산이 된다. 세 개의 빙산은, 작은 나라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다. 폭이 300미터에 해수면에서 돌출된 부분만 해도 3층 건물 높이가 넘는 빙산도 몇 개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눈부실 정도로 희고, 푸른 색과 녹색을 띠고 있다. 이렇게 표류하는 얼음 덩어리는 태고에 내렸던 눈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일단 유동을 시작하면 몇 세기에 걸쳐서 바다로 천천히 다가가서는 유유히 녹기 시작하고 이윽고 사라지게 된다.
“포드하고 크라이슬러도 살 수 있겠는걸.”
“만약 폴라 퀸 호가 저 엄청난 숫자의 빙산 중 하나와 충돌했다면, 연락할 틈도 없이 바라 해저로 가라앉았을걸.”
“그런 사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
“자네 쪽에서 뭐가 보이나?” 조르디노가 물었다.
“아무것도. 이렇다 할 특징은 없는 회색 바위가 흰 눈 아래에서 노출되어 있을 뿐이야. 황량하고 단조롭다고밖에는 더 할 말이 없군.”
조르디노는 해도에 또 표시를 하고는 손목시계를 보고 진행속도를 확인했다.
“포경기지에서 20킬로미터 날아왔는데, 크루저 승객은 흔적도 없잖아.”
피트는 고개를 끄덕여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사람으로 보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는군.”
“메이브 프레처는 두 번째 그룹이 바다표범 집단거주지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었지?”
“바다표범은 저기 있는데.”
몸짓으로 아래를 가리키면서 피트가 대답했다.
“800마리는 넘어 보이지만 모두 죽어 있어.”
조르디노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오른쪽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피트는 헬기를 선회하면서 천천히 하강해 친구가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코끼리 바다표범의 거대한 황갈색 몸체는 1킬로 정도 해안선을 메우고 있었다. 55미터 상공에서 보면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관찰하면 단 한 마리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그룹이 배에서 내렸을 것 같지 않은데.” 조르디노가 말했다.
더는 살펴볼 것도 없어서 피트는 헬기를 해안 쪽으로 되돌렸다.
“이번엔 아르헨티나 기지로군.”
“곧 나타날 것 같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될 것 같은데.” 피트가 거북한 듯 중얼거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조르디노의 웃음도 딱딱했다.
“도저히 이런 곳에서는 못 견디겠다고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도망가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군.” 피트가 대꾸했다.
“이 기지는 대기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를 처리하는 곳이야. 다섯 개나 되는 영구 조사기지 중 하나로 남극의 오존 홀의 움직임과 변동사항을 측정하는 곳이니까.”
“오존층에 관한 최신 정보는 어떻게 되나?”
“북반구와 남반구 양쪽 모두 대단히 약해졌어.” 피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북극 상공에 큰 구멍이 생긴 이래, 남극의 아메바를 닮은 구멍은 바람을 받아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남위 45도인 칠레나 아르헨티나 상공까지 이동했네. 뉴질랜드 남쪽 섬인 크라이스트 처치 시 상공도 통과했지. 오존 홀이 통과한 지역의 식물과 동물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자외선 피폭을 경험했다네.”
“그러면 선 로션을 잔뜩 칠해야 하겠구먼.” 조르디노가 이죽거렸다.
“그런 건 아무 도움이 안 되지.” 피트의 대답이다.
“자외선 방사가 조금이라도 늘어나게 되면 감자에서 복숭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해. 만약 오존 수치가 2, 3포인트만 더 내려가게 되면 전 세계의 식량생산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될 거야.”
“끔찍한 일 아닌가.”
“그 정도는 아직 시작에 불과해.” 피트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지구 온난화와 화산활동이 겹치게 되면 앞으로 200년 이내에 해수면이 30미터에서 최대 90미터까지 상승하게 될지도 모르지.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지구를 끔찍한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저기!” 조르디노가 갑자기 말을 끊으면서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들은 바다로 향해 돌출된 바위 경사면 상공을 지나는 참이었다.
“과학기지라기보다는 시골마을이라는 느낌이군.”
아르헨티나의 조사기지는 10채 정도의 건물의 집합체였다. 튼튼한 강철로 된 프레임에 돔형의 지붕을 올려놓았다. 주변 벽체는 중간이 비어서 바람과 얼어붙는 냉기를 막기 위한 단열재로 꽉 채워져 있다. 대기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안테나가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돔의 꼭대기 위에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피트가 건물 사공을 선회할 때 조르디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무선 연락을 취했다.
“여전히 은둔자의 집 문을 두들기는 것 같군.”
조르디노가 헤드폰을 벗으면서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열렬한 환영의 손길로 마중 나오진 않는데 그래.” 피트가 맞장구를 쳤다.
그 뒤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피트는 헬기를 여섯 채가 늘어서 있는 중에서 가장 큰 건물 옆에 착륙시켰다. 헬기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에 눈이 흩날리면서 얼음 가루가 되어 사방을 날아다녔다. 스노 모빌 2대와 전천후 트랙터가 방치되어 반쯤 눈에 묻혀 있었다.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고 굴뚝에서도 연기 한 가닥 올라오지 않았다. 연기는 물론 하얀 수증기까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묘하게 황량한 느낌이 든다. 하얀 막에 둘러싸여서 그런지 끔찍하게 불쾌한 장소로 보였다.
“화물칸에 있는 삽을 가져오는 것이 좋겠는걸.” 피트가 말했다.
“눈을 파내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
굳이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최악의 사태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헬기에서 내려서자 허벅지까지 묻히는 눈을 밀어내면서 중앙의 건물 입구에 도착했다. 문에는 눈이 2미터 높이로 쌓여 있었다. 20분 뒤, 그들은 문을 약간 열 수 있을 정도로 눈을 치웠다.
조르디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슬쩍 웃었다.
“먼저 가시죠.”
피트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조르디노의 배짱을 의심해 본 일은 없었다. 이 땅딸막한 이탈리아 인은 겁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오래된 의례였다. 피트가 앞에 서고 조르디노는 좌우와 후방에서 덮쳐올지 모르는 불의의 습격에 대비한다. 그들은 앞뒤로 위치를 잡고 짧은 터널로 들어갔다. 그것은 이중으로 추위를 막기 위한 안쪽 문으로 이어졌다. 문을 통과하자 그들은 긴 복도를 지나서 오락실과 식당을 겸하는 방으로 들어섰다. 조르디노는 벽에 붙어 있는 온도계로 다가갔다.
“빙점 이하인데 그래.” 조르디노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난방을 할 생각을 안 했군.” 피트가 대꾸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곧 첫 번째 주민을 발견했다.
기묘한 일이지만 그 남자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테이블 표면을 움켜쥔 채 둘이 나타나는 것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피트와 조르디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를 둘러싼 정적은, 부자연스러운 사고임을 짐작하게 했다. 덩치가 큰 남자로 머리는 벗겨져 있지만 검은 머리카락이 관자놀이를 따라 뒤통수로 연결되어 있었다. 몇 달, 혹은 몇 년이나 고립된 전초기지에서 생활하는 과학자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도 ‘면도’라는 남성의 기본예절은 깡그리 무시한 탓으로 솔질해서 모양을 가다듬은 수염이 가슴팍까지 드리워져 있다. 슬픈 일이지만 그 훌륭한 수염은 토사물로 더럽혀져 있었다.
추위 때문에 흰 대리석 가면처럼 변해버린 그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와 고통의 표정은 참담해서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할 정도여서 피트는 잠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끔찍한 얼굴이다.
눈은 앞으로 툭 튀어나왔고 입은 마지막 비명을 지르기라도 하는 듯 묘하게 일그러진 채로 벌려져 있었다. 이 사람이 엄청난 공포와 고통에 휩싸인 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흰 손에 달린 손톱은 테이블 표면에 박혀서 찢어지거나 부러져 있었다. 세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얼마 안 되는 피는 냉기 때문에 결정으로 바뀌어 있다. 피트는 의사는 아니었지만 – 되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 그 남자가 사후 경직 때문에 굳은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것이다.
조르디노는 식당의 카운터 앞으로 돌아 주방으로 들어갔지만 30초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저쪽에 2명이 더 있네.”
“최악의 예측이 적중했군.” 피트가 짓눌린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단 한 명이라도 여기 생존자가 있었다면, 보조 모터로 발전기를 가동시켜서 난방과 전력을 확보하려고 했겠지.”
조르디노가 다른 건물과 연결된 복도 몇 곳을 눈으로 좇았다.
“모두 살펴볼 마음은 안 드는데 그래. 이 얼음궁전하고는 빨리 작별하고 아이스 헌터 호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는걸.”
피트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네 본심은 뎀프시 선장한테 책임을 전가해서, 아르헨티나 당국에 이 비참한 소식을 전하는 임무를 맡기려는 거겠지. 당신네 연구기지의 연구원이 전원 의문의 죽음을 당해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말이야.”
조르디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한 조치 아닌가.”
“어쩌면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데도 철저하게 조사도 해보지 않고 도망쳐버리면 평생 후회하게 될걸.”
“나는 살아서 숨을 쉬는 사람만 좋아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발전실을 찾아서 보조 모터에 연료를 보급하고 가동해서 일단 전기를 확보해. 그리고 통신 센터로 가서 뎀프시에게 보고해 주게. 나는 이 기지의 다른 곳을 살펴볼 테니까.”
나머지 아르헨티나인 과학자들은 목숨을 잃은 바로 그 장소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끔찍한 고통을 얼굴에 새긴 채 남아 있었다. 몇 명은 연구소와 계기센터에 쓰러져 있었고, 세 명은 오존 측량을 하는 분광광도계 근처에 뭉쳐 있었다. 피트는 모두 16명의 시체를 찾아냈다. 그중에서 네 명은 여성으로 어느 시체도 기지의 방안에서 손발을 펴고 누워 있었다. 눈은 툭 튀어 나와서 허공의 한 점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입은 크게 벌린 채 심하게 구토를 했다. 그들은 두려워하며 끔찍한 고통에 시달린 끝에 목숨을 잃었고, 괴로워하는 와중에 얼어붙은 것이다. 피트는 폼페이의 화산재에 휩싸인 시체를 떠올렸다.
어느 시체도 부자연한 자세를 취한 채 굳어 있었다. 단순히 바닥에 쓰러진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급작스럽게 전신의 균형을 잃어버려서 필사적으로 일어서려고 하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몇 명은 실제로 융단을 깔아놓은 바닥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머리 옆쪽을 꼭 누른 사람도 하나 둘 발견했다. 피트는 기묘한 위치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혹시 부상이나 병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손을 떼려고 했지만, 그들의 손은 마치 귀나 관자놀이의 피부에 접합이라도 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한 구토는 바이러스나 부패한 음식물에 의한 죽음을 시사하는 듯했다. 하지만, 당연히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그 사인에 대해 피트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질병이나 식중독이라고 해도 불과 몇 분 동안에 모든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천천히 검토하면서 통신실을 향해 가는 도중, 피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추측은 곧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책상 위에 앉아있는 조각상 같은 시체의 영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기 앉을 수가 있지?” 피트가 침착하게 물었다.
“내가 올려놨어.” 조르디노가 무전기 앞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이 방에서 유일한 의자에 앉아있었거든. 저 사람보다 내가 당장 필요하니까.”
“이 사람까지 모두 17명이군.”
“시체 숫자는 늘어나기만 하는군.”
“뎀프시하고 연락은 되었나?”
“지금 대기 중이야. 이야기해볼 텐가?”
피트는 조르디노 쪽으로 몸을 내밀고는, 지구 위의 장소 대부분과 연결이 되는 위성전화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는 피트, 내 말 들리나요. 선장?”
“계속하게 피트, 여기 있으니까.”
“알이 이쪽 상황은 말했겠지?”
“간략하게는. 자네들이 생존자가 없다는 최종판단을 내려주면 바로 아르헨티나 관계 당국에 통지할 생각이야.”
“그럼 알려줘도 상관없겠군. 클로셋이나 침대 밑에 한두 명쯤 놓쳤을지는 모르지만, 시체는 모두 17명이야.”
“17명.” 뎀프시가 반복했다.
“알았어. 사인은 밝혀냈나?”
“틀렸어.” 피트가 대답했다.
“확실하게 외부로 드러난 증상은 가정용 의학사전에 실린 것하곤 딴판이야. 전문 병리학자가 살펴봐야만 하겠는걸.”
“자네도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스 프레처와 밴 프리트가 바이러스 감염이나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이 펭귄과 바다표범의 사인은 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네.”
“이 기지에서 죽은 사람 전원이 죽기 전에 심하게 구토를 했네. 그 원인을 알아봐야지.”
“기억해 두도록 하지. 상륙한 두 번째 그룹의 단서는 찾았나?”
“전혀 없어. 그 사람들 틀림없이 아직 크루저 안에 있을걸.”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
“지금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뎀프시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풀어낼 방법이 없는 퍼즐 같아.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 많아.”
“여기로 오는 도중에 바다표범의 집단거주지 상공을 통과했는데, 모두 죽어 있었네. 사태의 범위는 추정할 수 있을까?”
“자네들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20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제이슨 반도의 영국 기지와 호프만 앞바다에 정박 중인 미국의 크루저에서는 아무런 이상사태는 물론 생물이 대량으로 사망했다는 흔적도 없었다고 하네. 우리가 죽은 돌고래 무리를 발견했던 웨델 해의 해역을 고려한다면, 죽음의 원의 지름은 시모어 섬의 포경기지를 중심으로 대략 90킬로미터 이내가 될 것 같아.”
“우리는 계속 이동해서 폴라 퀸 호를 찾아보겠네.” 피트가 보고했다.
“본선으로 돌아와서 연료를 충분히 보급하도록 하게.”
“충분히 채워뒀어.” 피트가 뎀프시에게 대꾸했다.
“얼음 바다를 헤엄치는 건 질색이니까.”
조르디노가 연구기지의 무선 콘솔을 닫자 둘은 서둘러 입구로 돌아갔다. 황급하게 뛰어갔다는 것이 더 진상에 가까우리라. 피트는 물론 조르디노도 한 순간이라도 더 얼어붙은 무덤 속에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헬기가 기지를 출발하고 나서 조르디노는 남극 반도의 해도를 조사했다.
“어디로 갈까?”
“아이스 헌터 호의 컴퓨터가 선택한 해역을 수색하는 것이 타당하겠지.” 피트가 대답해다.
조르디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피트를 보았다.
“물론 잘 알고 있겠지만, 배의 컴퓨터가 내놓은 데이터 분석과, 자네가 주장하는 크루저가 남극반도나 근처의 섬에 좌초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일치하지 않는다네.”
“응. 템프시가 두뇌박스라고 부르는 그 컴퓨터가, 폴라 퀸호가 웨델 해의 훨씬 먼 바다에서 원을 그리면서 항해 중이라고 예측한 것은 잘 알고 있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군?”
“컴퓨터는 프로그램된 데이터만을 분석해서 기계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그것밖에는 못 한다고 해두지.”
“그래서, 어디로 갈 건가?” 조르디노가 되풀이해서 물었다.
“여기서 남극반도 끝인 무디 곶까지, 북쪽 섬 모두를 조사해야지. 그리고 동쪽으로 꺾어서 바다 위를 날면 아이스 헌터 호와 합류할 수 있을 거야.”
조르디노는 남극해협 최고의 사기꾼에게 자신이 속아 넘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단 상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컴퓨터의 말을 듣기는 싫다는 거로군.”
“응. 100%.”
조르디노는 상대의 말에 빨려드는 것을 느꼈다.
“무슨 생각인지 일단 가르쳐 주게.”
“바다표범의 집단거주지에 사람 시체는 없었거든. 따라서 크루저가 승객들을 상륙시키려고 그곳에 정박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하네. 여기까지는 알겠지?”
“거기까지는.”
“포경기지에서 북상 중인 크루저를 생각해보게. 식중독이건 질병이건 바이러스건,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저 학살극이 승객을 상륙시키기 전에 크루저의 승무원을 덮친 것이 틀림없네. 이 주변 해역에서는 유빙이나 빙산이 펀치 볼에 띄워놓은 얼음조각만큼이나 많이 돌아다니니까, 선장이 자동항해장치에 맡겨 놓았을 리가 없거든. 자기가 직접 타륜을 잡고 컴퓨터와 위성항법장치의 도움을 받아 운항하고 있었을 거야.”
“거기까지는 아무 반대 없네.” 조르디노가 기계적으로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뒤는?”
“크루저가 시모어 섬의 해안을 따라서 운항하는 도중에 승무원이 쓰러졌네.” 피트가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자네 해도의 약간 북동쪽으로 200킬로미터 정도의 직선을 긋고는 거기에 30킬로미터 정도의 반원을 겹쳐보게. 그리고 현재 위치와 침로 상에 있는 섬을 가르쳐주게.”
조르디노는 주문에 대응하기 전에 먼저 피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컴퓨터와 자네가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건 뎀프시 선장이 바람이나 조류에 훨씬 관심을 뒀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양반은 자기가 숙련된 뱃사람이기 때문에 빈사지경의 선장이라면 마지막 행동으로 자신의 배를 구하려 들 것으로 예측한 거야. 그래서 폴라 퀸 호가 암초 투성이인 해안에서 좌초될 위험을 피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먼바다로 배를 돌려서 빙산에 부딪칠 위험은 무시하기로 한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로군, 자네는?”
“그 연구기지에서 시체를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 불쌍한 사람들은 제대로 판단을 내릴 시간도 없었을걸. 그리고 혹시나 생각했더라도 실행할 수도 없었을 테고. 크루저 선장은 배가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도중에 자기 토사물에 숨이 막혀서 죽었을 거야. 배 위에 있던 다른 상급 선원이나 기관사도 모두 죽어버려서 폴라 퀸 호는 항해를 계속하다가 결국 섬의 암초에 좌초되던지, 아니면 빙산에 충돌해서 가라앉았을 것이야. 어쩌면 남대서양으로 나갔지만, 엔진의 연료가 떨어져서 항로에서 멀리 떨어진 채 유령선이 되어 표류하고 있거나.”
피트의 추측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조르디노는 듣기도 전에 이미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 그 능력으로 장사해보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5분 전까지는 없었네.” 피트가 대꾸했다.
조르디노는 한숨을 쉬고는 피트가 말한 대로 해도 위에 선을 그었다. 2, 3분이 지나자 해도를 계기반 위에 펴서 피트가 선이 기록된 곳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자네의 직감이 제대로 맞아떨어져서 폴라 퀸 호가 여기와 남대서양 사이의 육지에 충돌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해상으로 돌출된 세 개의 작은 섬 중의 하나일 것 같은데.”
“이름이 뭐지?”
“데인저 군도.”
“청소년용 해양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름이군.”
조르디노는 연안에 관한 매뉴얼을 폈다.
“선박은 상당한 간격을 두도록 주의하고 있군.”
그가 내용을 알렸다.
“현무암으로 된 절벽이 거친 파도 속에 예리하게 솟아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암초에 좌초한 배의 리스트가 실려 있네.” 해도와 매뉴얼에서 고개를 들더니 딱딱한 얼굴로 피트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놀 수 있을만한 곳 같지는 않은걸.”





덧글
루드라 2008/09/23 01:01 # 답글
여전히 감사~ ^^